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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년회 보다는 송년회를 갖자

이형영 | 2011.12.06 18:15 | 조회 6108



망년회보다는 송년회를 갖자

 

2011년도 이제 1달 남았다. 2011년 초에 사람들은 힘찬 희망을 품고 한해를 출발하였다.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각자의 목표를 성취하려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어느 해처럼, 이루지 못하고, 채우지 못한 것만 많이 안고, 마지막 달 12월을 맞았다. 어쩐지 아쉽고, 후회되는 것도 있고, 한편으로는 소망한 것을 다 이루지는 못하였어도, 이 정도라도 채운 것과 지금까지 건강하게 일하면서, 가정이 행복하게 지낸 것을 감사하는 마음도 가져본다.

세밑이 다가오면, 멋진 한해의 마무리를 위해 송년회(망년회)를 정성껏 준비한다. 연인과 로맨틱한 데이트도, 친구들과 동료들이 끼리끼리 송년모임으로 술을 한잔하러가는 움직임이 많아지면서, 유흥가와 식당가 그리고 번화가는 벅적거리기 시작해졌다. 이왕이면, 특별한 곳에서 색다른 서비스를 기대하기도 한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창회와 민간 사회단체 등의 모임에서 송년회 혹은 망년회를 한다. 이 송년회와 망년회는 모든 이들이 행하는 년말행사가 되어버렸다.

요즈음은 망년회(忘年會)라는 말이 일제의 잔재라고 하여, 송년회(送年會)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송년회의 풍속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망년회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망년회(忘年會)와 송년회(送年會)의 문자적 차이를 보면, 망년회의 망자는 잊을 “忘” 을 써서, 지난 한해를 모두 깡그리 잊어버리라는 뜻이고, 송년회의 송자는 보낼 “送”로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며 한해를 정리하고 보내자는 뜻을 갖고 있다.

이는 망년회를 쓰는 사람은 한해를 반성하고 새해를 위한 계기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술로 잊어버리라는 의미를 보여 주는 듯하여, 좋은 말은 아니다. 망년회를 기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자신이 고통스러운 문제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억제(suppression)의 심리대응전략을 쓰는 사람이든지, 또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서 가끔 보이는 소위 “필름이 끊긴다.” 는 현상인 기억 장애 (blackout)를 기대하는 듯하다.

사람은 살다보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성적충동, 공격충동, 적개심, 원한, 좌절감등에서 오는 갈등을 느끼게 된다. 이 갈등들이 심하면 불안으로 바뀌어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러한 곤경을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불안에 대응하며 대처하기 위해 동원하는 심리적 책략을 방어기제라 하는데, 이중에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기제가 억압 (repression)으로, 이는 지난 한해의 받아들이기 곤란한 욕망, 충동, 생각을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밀어 넣어서 잊어버리게 만든다. 술 먹고, 떠드는 거창한 행사를 통한 망년이 아니더라도 고통의 경험들은 저절로 잊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심리현상이다.

이에 비해 송년회는 지난해를 정리하고 다음해를 준비하는 의미가 있어서 좋은 의미라 생각된다.

일본에서 망년은 “일 년 동안의 노고를 잊는 다.” 는 뜻이다. 일본에서 중세 때부터 망년(忘年) 또는 연망(年忘)이라 하여, 섣달그믐께 친척과 지인들끼리 어울려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면서 한해의 노고를 모두 잊어버리는 풍속이 있었다. 이것이 망년회의 뿌리이다.

일본의 망년회 풍속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 체결된 이후로 추정된다. 부산, 원산, 인천이 항구로 개항되고, 서울에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망년회 풍속이 들어온 것 같다.

1899년 “독립신문”과 1907년 “대한 매일신문”에 망년회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 이러한 망년회는 일본의 침략이 진행되면서 더욱 유행하였다. 한일 합방 직전에 “대한매일신문”에 다양한 망년회 행사가 실렸다. 이로 보아 망년회가 서울의 권력층 과 지식층으로 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망년회에 대한 기록은 몇몇일 뿐이고, 더구나 오늘날의 망년회 같은 12월의 세시풍속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다. 망년이라는 말은 “나이를 잊는 다” 또는 “나이 차이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 라는 말로 쓰였다. 고려사에는 망년우(忘年友)와 망년교(忘年交)에 대한 이야기 나온다. 1170년 고려 의종28년에 일어난 무신의 난(亂) 때 살아남은 젊은 문인 들, 이인로-이규보-오세재- 임춘 등 은 “ 망년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망년회는 나이를 따지지 않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라는 뜻이었다. 망년회 회원들은 이 의현- 최충 헌등 무신들이 권세를 누릴 때, 술과 시로 세월을 한탄하며 보냈다.

송년회가 우리에게도 일본의 망년회처럼 술을 많이 먹고 취하는 날로, 그동안 참았던 억울함과 고통스러웠던 일을 술의 힘을 빌려, 내 품어내는 난장판의 날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술 문화가 많이 성숙되어지고, 많이 경제적으로 변하여긴 했지만 아직도 송년회는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시는 모임이 된 것 같다. 심지어는 송년회의 과음으로 병들고,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근래에 어떤 기관에서 “ 송년회로 술자리가 많아 질것인데 술자리를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라는 조사에서 응답자의 78.5%에서 부담스럽다, 10.5%에서 술자리가 즐겁다고 대답하였다. 망년회의 술자리는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날 중에 버릴 것은 버리고, 간직할 것은 간직하면서,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함께한 가족, 이웃 그리고 직장 동료들과, 더 나아가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한 친지, 친구 그리고 존경하는 분들을 만나고,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고통을 서로 위로하고, 좋은 길을 제안하며, 따뜻한 격려로 새로운 다짐의 계기가 되는 송년회는 필요할 것이다.

 


신경정신과 원장 이 형 영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및 과장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대한 신경정신의학회 대의원회 의장

                                                     전남대학교 평의원회 평의원 의장

                                                     광주광역시 정신보건심의위원회 위원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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