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죽음에 대한 견해
인간의 죽음에 대한 견해.
인간은 전 생애, 즉 유아기-아동기- 청소년 기- 성인기로의 발달적 변화와 과정을 거친다, 인간의 발달의 마지막 시기인 성인기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가 되면, 신체적으로 점차 약해지고. 활동영역 즉 직장에서 은퇴하므로 힘과 특권의 상실 등으로 의존심이 증가하게 된다. 여기서 더 늙으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직면하게 된다. 노년기는 인생을 정리하고 통합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통합과 정리하는 일에 실패하면, 실망의 위기를 초래한다. 어떤 사람은 보다 젊은 나이에 정상적인 인간 발달을 거치지 못하고, 준비 없이 노년기 맞아, 피 할 수없는 죽음의 문제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언제 가는 꼭 죽는다. 그 죽음이 병으로 인한 것이건 아니면 사고나 자살에 의한 것이건 간에 한번 죽는 것은 틀림없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하였다 하더라도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구제 할 수는 없다. 오늘날의 의학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인간의 죽음을 얼마동안 지연시킬 수 있을 뿐 이다. 이토록 가장 뚜렷하고 엄연한 과제인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의학도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엄청난 두려움 때문인지 죽음을 깊이 있게 학문적으로 고찰하려 들지 않는 것 같다. 너무 무서워 못 본채하고 있는 듯하다.
의사를 포함한 사람들이 진지하게 인간의 본질에 관하여, 심한 고뇌에 빠질 때가 바로 죽음이 가까워오고 있는 환자를 대할 때이다. 특히 악성 암 같은 불치병에 걸려있는 환자에게 당신은 불원간 이 세상을 하직할 것이라는 최후 선고를 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음 학( thanatology)이란 말은 1912년 죽음에 관한 이론 정립 자이었던 “ 로즈엘 파크” 가 만들어 낸 말이다. 이 말은 S. Freud의 죽음의 본능 (thanatos)에서 비롯했다. 파크는 죽음에 관한 여러 면을 학술적으로 정리하여 하나의 학문으로 독립시키려 노력하였다.
죽음은 인간에서 가장 심각한 탐구 대상이 되어왔다. 사실 인류는 오랜 역사를 거듭하면서 죽음의 공포를 해결하려고 무단히 노력을 기울어 왔다. 죽음은 참으로 많은 것을 의미한다.
1922년 “ 웨버(Weber)는 일반 대중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조사 정리하여 아래의 4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 번째 태도는 “죽음은 착각일 뿐 삶의 연장”이다. 이 견해는 죽음이란 거짓이며, 착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또 다른 인생에로 전환을 의미하므로, 죽음은 전이(轉移) 이지 사멸(死滅)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 태도는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냉혹한 사실”이다. 첫 번째 태도가 죽음에 대한 완전 부정이라면, 두 번째 견해는 죽음에 대한 완전 승복이다. 따라서 인간은 죽음을 조용히 맞이하라는 것이다.
세 번째 태도는 “죽음은 삶의 설명이며, 받음”이다. 이 견해는 죽음과 신성을 연관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이야 말로 현존의 최대 이유이며 현존으로 부터의 해제 이며, 보상이므로, 지금의 모든 불행도 죽음으로써 평등화되기 때문에 현존의 고달픔도 이겨나가야 한다는 견해이다.
네 번째 태도는 “죽음은 생명의 단말마( 斷末魔)요, 패배”이다. 이 견해는 죽음을 더 할 대 없는 비극으로 보며, 생존 시에 갈구하였던 모든 가치관이나, 염원도 파멸되고 마는 것이니, 한마디로 죽음은 더 할 데 없는 참사라는 견해이다.
또한 사람들은 나이별로 죽음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 5세 정도의 어린이는 “죽음을 하나의 이별”로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의 죽음을 그 사람이 자기 곁을 떠나는 것으로 지각하며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다른 곳에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린이는 죽은 사람을 불러 달라고 조른다. 어린이는 부모의 죽음을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믿지 않고, 계획된 자기를 괴롭히는 행동으로 이해하며 슬픔과 분노를 보인다. 어린 아동은 집안에 자살이나 질병 등으로 죽은 사람이 있었거나, 자살의 위협이 있었을 경우, 어린이는 이 죽음을 조작된 악한 행동으로 이해하여, 그것에 대한 복수 환상을 갖게 되고, 이것이 성장 후에 자살 동기가 되기도 한다.
5-10세 사이의 어린이는 죽음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사람을 납치해 가는 어떤 사람으로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을 무서운 사람으로 본다. 그리고 10세 이후에야 죽음을 “ 누구에나 올 수 있는 생명의 종말로 받아들인다. 즉,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마지막 길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미리 준비된 사람들은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고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소설가 “로망 롤랑”의 명언인 “인생에게는 왕복 기차표를 팔지 않는다.” 라는 말처럼 다시 되돌아 올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기독교적 견해는 “원래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영생을 주셨다. 그러나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죽음이라는 비극이 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인류의 죄를 사하여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래서 죄인들인 인간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다시 죽지 않고, 영생 할 수 있게 하신다, 그래서 육체가 죽는 것은 영생하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를 가르친다.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죽음의 터널을 지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과정으로 믿고, 살아가는 동안, 만물과 이웃을 사랑하며 아름답게 사는 것이 지혜자의 길이 아닐까.(2018-11-7)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이 형 영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및 과장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대한 신경정신의학회 대의원회 의장
전남대학교 평의원회 평의원 의장
광주광역시 정신보건심의위원회 위원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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